<겨울의 행위> 잔류
태식이의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이내 따라 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있지 싶어 내 앞에 놓인 술을 털어넘겼다.
태식이가 올라가고 난 후, 모인 장소에는 눈보라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탓인지 몸이 차가워졌다. 적적한 분위기를 깰 겸 나는 얼음이 든 술잔을 한번 흔들고 말했다.
“태식이가 많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렇게 힘없이 가는 모습은 처음이야. 얘기라도 더 나눴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많이 힘든가?”
(…)
“걔 걱정은 하지도…”
“아마 처음 겪는 일이라 그럴 거야 시담아. 누구든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잖아.”
내가 말을 꺼낸 후 한동안 말이 없다가 창현이 말을 도경이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말을 하는 동안 도경의 시선은 자기 앞에 놓인 술잔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음 더 넣어 줄게.”
“고마워….”
설아는 도경이의 술잔에 얼음을 더 넣어주며 다리를 꼬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잘 나가던 애가 한순간에 망했으니 괜찮을 수 있니? 망하고 나서
다른 일을 찾아본 것도 아니고, 술에만 쩔어 살더니 계속해서 자살한다나
뭐라나 말하는 걸 일부러 시간 맞춰서 걱정하는 자리를 만든 건데, 죽긴 누가 죽는다고,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설아는 말을 끝내자 마자 자신의 잔에 얼음을 더 넣고는 술을 따랐다.
“기뻐.”
“뭐? 방금 뭐라고…?”
유미가 작게 내뱉은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지으며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기쁘다고, 계속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잘 살고 있어서.”
유미는 얼굴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 나는 유미가 태식이를 걱정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술을 마셨다. 액체가 비워진 술잔의 얼음들이 부딪쳤다.
'오늘 아침부터 내리던 눈은 잠시나마 그칠 예정이지만, 01시 이후에는
폭설주의보가 발령될 예정입니다. 예상되는 양은 35cm정도로 올해 최고
적설량을 기록하겠습니다.'
산장 거실 구석에 있던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담아 우리 눈도 그치는데 잠깐 산책하러 갈까?”
도경이는 내 옆으로 와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겨왔다.
“그래 잠깐 갔다 와. 여기 산장은 데이트 코스로도 괜찮으니까.”
창현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며 혀를 찼다.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